디지털 포켓몬 가오레 디스크(?) 제작기

디지털 포켓몬 가오레 디스크(?) 제작기

우리 아들이 최근에 푹 빠져있는  '포켓몬 가오레'라는 게임. 포켓몬에 빠져살다보니 이 게임도 거의 매주 하러 가는 것 같다.

비싸면서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우선 1500원을 넣으면, 게임이 시작되는데, 이 때 아래처럼 생긴 '가오레 디스크'라는 것을 준다. 그려져 있는 별 개수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데,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있다. 물론 높은 등급의 디스크를 받기는 쉽지 않다. 참고로  아래 그림은 4등급 '대짱이' (QR코드는 처리해서 인식이 안되도록 했다).

어쨌든 이 디스크가 내가 가진 포켓몬이다.  디스크를 기계에 넣고 '배틀'을 하면 포켓몬을 잡을 기회를 준다. 게임 방법은 전혀 어렵지 않다. 기계에 달린 두 개의 버튼을 신나게 누르기만 하면 된다.

배틀이 끝나서 상대 포켓몬을 잡으려면(디스크를 받으려면) 1500원을 추가로 내야한다.

매주 주말마다 가서 2~3만원씩 쓰다보니 집에 가오레 디스크가 넘쳐난다. 그냥 들고다닐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서 디스크 보관함도 사줬다.  게임하러 갈 때마다 내가 챙겨야하는데,  큼지막한 보관함 들고다니기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종의 올인원 디지털 가오레 디스크 만들기(?)에 도전했다.

알리에서 LCD가 달려있는 ESP32 보드를 샀다. Lilygo T-diaplay S3이다. 가오레 디스크에 인쇄된 QR코드를 게임기 카메라가 인식하는 방식이라 QR코드를 따서 위치에 맞춰 LCD에 뿌려주면 될 거 같았다. 요렇게 앙증맞은 케이스에 고이 담겨 도착했다.

정확한 위치 세팅은 나중에 삽질을 통해서 하도록 하고, 우선은 생각대로 동작하는지 검증해보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구글링 해가며 Esphome으로 펌웨어를 만들었다. 위의 대짱이 사진에서 QR코드만 딴 이미지 하나와 대짱이 가오레 디스크 전체 이미지 하나, 총 2개를 넣었봤다.  1번 버튼을 누르면 이미지가 돌아가고, 2번 버튼을 누르면 딥슬립(Deep sleep) 모드로 들어가도록 했다. 따로 전원 버튼이 없기 때문이다.  딥슬립 상태를 벗어나려면 다시 1번 버튼을 누르면 된다.

위의 움짤처럼 생각대로 잘 동작했다. 남은 과제는 ①배터리를 연결하고, 적당한 케이스를 씌워주는 것  ②가오레 디스크  QR코드 찍어서 위치 맞추기 노가다.  요렇게 두 가지다.

첫 번째 과제는 쉽지 않다. 이 제품이 가오레 디스크의 2배 정도 두께인데, 뒤쪽에 배터리를 배치하고 케이스까지 씌우면 훨씬 두꺼워져 기계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USB 단자 아래쪽으로 달아 길쭉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과제도 시간이 꽤 필요하다. 가오레 디스크 실물을 하나하나 다 사진으로 찍어서 QR 코드만 잘라낸 뒤 적당한 뒤 올인원에 넣고, 일일이 가오레 디스크 실물과 비교하면서 위치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만들어놓고 나니 왠지 더 진행이 안될 것 같다. 포켓몬 가오레 게임 제작사가 비정품 디스크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쪽지를 기계마다 붙여놓은데다 애기들이 득실득실한 곳에서 이걸 꺼내 게임기에 넣을 엄두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주문할 때 부터 실제로 쓰지 못할 것 같았지만... 꼭 쓸모있는 것만 만들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지난 주말에 어김없이 가오레를 하러가서 봤더니... 가오레 디스크 투입구가 좁아서 가오레 디스크 2개도 겹쳐서 안들어갈 정도였다. 디지털 포켓몬 가오레 디스크는 더 손 써볼 것도 없이 실패한 프로젝트였다ㅠㅠ